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룬발트 전투 (문단 편집) == 평가 == 전투 중 리투아니아군이 패주했다가 복귀해서 기사단의 측면을 무너뜨린 부분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처음부터 리투아니아군이 거짓 후퇴를 계획하고 이것이 성공했다는 해석과, 리투아니아군이 정말로 전열이 무너져서 패퇴했다가 겨우 수습해서 역습에 성공한 형태라는 해석으로 나뉜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쪽에서는 말그대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승리'''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부가 효과로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서구세계의 선진문물을 다이렉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됨으로써 문화적으로 뒤쳐져있던 리투아니아가 문명국으로서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다. 오늘날까지도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알아주는 독실한 가톨릭 국가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연합 왕국을 구성하게 되면서 국가의 역량 자체가 훨씬 커졌다. 간단히 지도만 봐도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가 폴란드 왕국의 2배가 넘었다. 만약 서로 다른 나라로 지냈다면 국경을 마주 댄 이상얼마 안가 적으로 돌아섰을 것이며 결국 양국은 중소 국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채 사이좋게 자멸했을 것이다. 이런 가상적국 1순위를 평생의 동반자로 끌어들임으로써 서로 윈윈전략이 된 것. 그리고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독일 기사단을 완전히 복종시키며 차후 200여년간 중부 유럽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될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전성기의 초석을 다지게 된 전투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양국에서는 해마다 이 날을 기념해서 리인액트 같은 각종 행사를 아주 거창하게 하며 미디어 매체에서도 아주 열심히 빨아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42DavvCuOJs|2010년에 만들어진 그룬발트 전투 600주년 기념 영상. 국뽕을 치사량으로 들이부은 폭풍간지를 보여준다.]] 인터넷 상에서 한키배 하기로 유명한 폴란드 키워들에게도 언터쳐블급의 찬양을 받는다. 한국사로 따지면 [[명량 해전]]에 비유될만 하다. 19세기 화가 얀 마테이코가 1878년에 [[https://ko.wikipedia.org/wiki/%EC%96%80_%EB%A7%88%ED%85%8C%EC%9D%B4%EC%BD%94#/media/File:Jan_Matejko,_Bitwa_pod_Grunwaldem.jpg|민족 기록화]]로 그리기도 했다. 당시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소속이었던 [[벨라루스]]에서도 이 전투를 성대하게 기념한다. 중세 갑옷과 무기를 차려입고 [[리인액트먼트]]를 하면서 그룬발투 전투 승리를 기리는 문화가 지금도 있다. [[https://youtu.be/g9MADBYQ9js|걸어서 세계속으로 영상]] [[독일]]에서는 조상들이 왕창 깨진 전투라 좀 쉬쉬하는 모양이다.[* 튜튼 기사단 자체는 당시의 독일계 세력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지만, [[독일 기사단국]]을 흡수한 [[프로이센 왕국]]이 바로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된다.] 오히려 이쪽에선 1914년에 있었던 2차 [[타넨베르크 전투]]가 더 유명하다. 그리고, 독일 이외의 모든 나라에서는 타넨베르크 전투는 1914년의 것을 지칭하지 이 전투를 지칭하지 않는다. 독일 극우쪽에서는 '''오히려 훨씬 열세의 병력으로 버틴 기사단이 더 대단한거다!''', '''쪽수로 밀어붙여서 이긴게 뭐 자랑이냐'''하며 [[정신승리]]를 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전투 자체가 튜튼 기사단이 [[십자군전쟁]]에서 빠진 뒤 다른곳에서 세력 좀 확장해 보려고 시작한 '[[북방 십자군]]'의 최종 종착역이었기 때문에 쉴드 친다는거 자체가 무의미하다.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나중에는 리투아니아가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사실상 이교도 토벌이란 명목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루어놓은 영토와 재물이 아까워서라도 전쟁을 계속해댔기에 본래의 목적을 상실해버렸다. 4차 십자군도 그렇고, 칼 있고 돈 없는 조별과제가 십자군인지라 탈선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다. 이들은 이미 [[정교회]]를 신봉해서 종파가 달랐긴 하지만 기독교 국가인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공격했던 적도 있었다.[* 이 때도 [[알렉산드르 넵스키]]에 의해 [[페이푸스 호]]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루스 쪽으로의 진출을 단념하게 된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에서는 '''십자군'''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십자군을 신의 대리인으로 봉사하는 선하고 숭고한 전사로 묘사하는 서유럽과 달리 리투아니아에서는 수백년동안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불사르고 약탈한 '''침략자'''로 표현한다. 리투아니아의 전래동화나 설화들을 보면 괴물로 변하는 독일 기사단이라던가 십자군의 침공에 고통받고 맞서 싸우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튜튼 기사단은 교황청이 적당히 하지? 라 해도 씹고 노예사냥 하던 이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